호초였던 후추 때문에 일어난 역사
호초였던 후추 때문에 일어난 역사
  • 박기철 교수
  • 승인 2018.09.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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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기철)
(사진=박기철)

추어탕에 산초(山椒)를 넣어 먹는다. 미꾸라지탕의 비릿함을 잡는 향신료(香辛料)다. 우리 전통 식품이다. 그런데 북쪽에서 산초 비슷한 것이 들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북쪽이란 여진족의 땅 만주다. 이들은 금나라를 세워 세력을 키우며 결국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하여 청나라를 세웠다. 

이후 많은 청나라 문물이 우리나라로 들어 왔다. 이 때 들어온 중국 요리를 청요리라 하는 이유다. 우리는 북쪽 지역을 호(胡)라 불렀다. 우리 옷에는 주머니가 없는데 청나라 사람들 옷에 있는 호(胡)주머니가 들어 왔다, 우리 떡은 안에 아무 것도 없는데 단맛이 들은 호(胡)떡도 들어 왔다. 이 때 들어 온 것이 호초다. 북쪽에서 온 산초라 하여 호초(胡椒)라 했다가 발음이 변해 후추가 되었단다. 100% 정설(定說)은 아니어도 그럴 듯하면 대충 정설(正說)로 여겨도 된다.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India)라고 들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도 잘 자란단다. 작고 동그란 열매를 말려 빻아 가루로 만들어 고기에 뿌려 먹으면 풍미를 더한다. 천여 년 전부터 후추의 맛에 흠뻑 빠진 유럽인들은 동방으로 난 교역로를 통해 후추를 가져다 먹었다. 

그런데 1453년 오스만투르크제국이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멸망시켰다. 이후 중동과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자 유럽인들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육상의 동방교역로가 막히게 된 것이다. 

후추가 가장 귀했을 때는 후추 한 알이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쌌다고 한다. 이에 후추를 얻으러 인도로 간다며 대서양을 건넌다. 결국 1492년 콜롬부스는 카리브해의 섬에 닿는다. 이후 중남미 대륙에 금이 많다는 것까지 알며 잔인무도한 약탈과 정벌이 시작되었다. 이 모든 흑역사가 후추를 향한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후춧가루는 귀하지 않다. 어디서든 싼 값에 살 수 있는 흔한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춧가루보다 인기가 없다. 하지만 나는 후춧가루를 늘 식탁에 놓는 편이다. 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도 뿌리고 국수를 먹을 때도 뿌린다. 미리 갈아서 통에 넣어 파는 후춧가루 상품을 먹다 언젠가부터 후추 알갱이가 들어 있는 후추분쇄기 상품을 산다. 먹을 때마다 갈아서 뿌리니 확실히 풍미가 살아나는 것 같다. 후추의 진한 풍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오늘도 후춧가루를 갈아서 뿌려 먹었는데 갑자기 후추에서 비롯된 역사지리가 생각나 세계지도를 배경으로 후추 알갱이가 든 후추 분쇄기를 찍었다. 후추 알갱이 하나를 꺼내서 찍었으면 좋으련만 이상하게 아무리 해도 뚜껑이 도무지 열리지 않아 이렇게라도 찍었다. 세계지도를 배경으로 하니 500여 년 전 후추를 얻기 위해 지구에서 벌인 인간의 행동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하다. 

박기철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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