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②
[산서산책]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②
  • 호경필 전문위원
  • 승인 2018.07.16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9세의 괘란 크롭, 에베레스트 도전 
-by fair means

[호경필 전문위원] ‘바이 페어 민즈 by fair means’는 순수하고 공정한 방법과 수단으로 산을 오르려고 하는, 순수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등산가들에게는 절대적인 덕목이다. 알프레드 머메리와 헤르만 불, 라인홀트 메스너는 이 철학의 선구자들이다. 이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29세의 괘란 크롭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궁극의 절대 고도 0에서 8,848m의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도전하는 등산가에게 에베레스트의 진정한 높이는 8,848m가 아니고 6천미터 급의 고산에 불과하다. 산소마스크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과 자유 의지를 가로 막는 벽이다. 셀파의 도움과 고소캠프 등의 외부지원도 배격하는 그의 계획은, 고향인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는 트레일러가 달린 자전거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는 혼자서 모든 짐을 운반하고, 등반은 무산소로 어떤 고정로프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받은 외부의 지원은 독일로 넘어올 때 이용한 나룻배와 생일 때 받은 초콜릿 한 개,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할 때 사용한 아이스폴 루트뿐이었다. 

1995년 10월 16일, 자전거에 연결한 트레일러에 110kg의 짐을 싣고 11,000km에 이르는 카트만두까지의 자전거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짐에는 자전거 여행에 필요한 장비와 에베레스트 등반에 필요한 식량과 장비, 연료 일체가 준비되어 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그로서 등반식량은 모두 동결건조된 고소식량으로 최대한 경량화시켰다. 

■ 괘란 크롭 지움ㅣ출판년도 1999년ㅣ쪽수 228쪽ㅣ디스커버리북스 펴냄
■ 괘란 크롭 지움ㅣ출판년도 1999년ㅣ쪽수 228쪽ㅣ디스커버리북스 펴냄

동유럽과 아시아를 통과하는 130일간의 여정은 스웨덴430km, 독일310km, 체코223km, 슬로바키아77km, 헝가리265km, 루마니아233km, 불가리아390km, 터키1,191km, 이란1,601km, 파키스탄1,177km, 인도914km를 거쳐 네팔340km에 이르렀고, 도중에 시가지를 통과하며 받은 비웃음과 냉대, 몰상식한 돌멩이 습격과 멱살잡이, 경적시위, 총격사건, 지프와의 충돌 등의 사건과 사고를 겪어야 했다. 

1996년 2월 22일, 카트만두에 도착하여 한 달 동안의 휴식을 취한 그는 배낭 두 개에 65kg의 짐을 지고 캐러밴을 떠났다. 4월 13일, 고향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해발 5,100미터 지점의 에베레스트 쿰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는 이미 그에게 산이 아니었다. 각국의 상업원정대는 밤마다 파티를 열었고 음주와 가무는 거의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했으며 남녀 간의 스캔들도 발생했다. 콜라 한 병에 7달러, 미리 개척해 놓은 아이스폴 루트 통과비로 2,200달러, 그리고 상업원정대의 1인당 참가비는 6만 5천달러에 달했다. 

4월 16일, 기본장비와 텐트, 6일분의 식량을 갖고 등반을 시작했다. 그는 사다리와 안전확보물 등 미리 장비를 설치해 놓고 통과비를 받는 아이스폴을 우회해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며 오르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비디오 촬영을 위해 나온 그의 동료가 건네주는 바나나를 거부했고, 미국의 상업원정대 대장인 스코트 휘셔가 주는 치즈도 ‘바이 페어 민즈’ 원칙에 따라 받지 않았다. 

5월 3일, 캠프3를 새벽 2시에 출발하여 사우스콜을 거쳐 남동릉에 붙었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이 없다. 그해 처음으로 등정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무산소로 혼자서 루트를 개척하느라 숨이 턱턱 막히며 남봉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30분. 정상까지는 100여 미터. 1시간은 더 걸리지만 오후 2시 이전에는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해야 된다. 그래야 어두워지기 전에 안전한 귀로가 보장된다. 이것은 거의 철칙으로 되어있다. 그는 과감하게 돌아섰다. 사우스콜까지 어렵게 내려왔는데, 역시 그를 기다린 것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구름과 개스, 폭풍이었다. 겨우 찾은 텐트 속에 혼수상태로 쓰러져 깊은 잠에 들었다. 

5월 8일, 4개의 상업등반대 팀이 등반을 시작하면서 ‘1996년 에베레스트 대참사’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참가 대원들의 무경험이 탈진을 가속시켰고, 이들을 무리하게 끌어 올리려는 가이드와 셀파의 체력소모도 전진을 더디게 하였다. 상업등반대 대장들의 과도한 등정 집착과 정신적 압박으로 정확한 상황 판단이 곤란했고, 갑작스런 폭풍과 눈보라로 인해 하산하던 8명이 희생당했다. 

크롭은 ‘이번 등반을 위해 그토록 힘들게 준비해 왔는데 여기서 돌아서야 하나? 저 위에는 아직 그들의 시신이 남아 있는데, 아는 사람들의 시신을 넘어 정상을 향해야 하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게 지금도 외부 지원 없이 등정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나? 날씨는 좋아질까? 얼어죽는 것보다 더 참혹스러운 것은 고독이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도전하는 정신의 소유자가 위대한 등산가’라며 5월 23일, 재도전에 나섰다. 

남봉에서 거의 탈진한 상태인 크롭 앞으로 등정을 마친 아이맥스 팀이 내려간다. 그들의 산소마스크와 장비는 환상처럼 보였고 심한 무력감을 주었다. 힐라리 스텝에 미리 설치된 고정로프가 나타났다. 마지막 유혹이다. 그는 그 고정로프마저 이용하지 않고 넘어서서 정상에 오른다. 
그의 다음 등반 대상지는 2004년에 단독으로 남극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어떠한 운송도구도 이용하지 않고 카누와 돛단배를 이용하여 남극대륙에 상륙하고, 450km를 스키로 이동하여 남극점을 찍는 일정이다. 

- 호경필 (에코로바 커뮤니티샵 운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