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생태학 아젠다를 깨우는 글쓰기
인문생태학 아젠다를 깨우는 글쓰기
  • 박기철 전문위원
  • 승인 2018.06.0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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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기철)
(사진=박기철)

공양(供養)이라는 낱말이 있다. 불교에서 온 단어지만 한자의 원래 뜻을 가지고 나름 공양의 의미를 풀자면, 주어서(供) 기른다(養)는 뜻이다. 누가 누구에게 준다는 뜻일까? 바로 식물과 동물인 생명체가 자신의 몸을 주어서 내 몸을 기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이러한 공양의 뜻을 마음속으로 지닐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생명체에 감사하며 먹게 된다. 결국, 공양이란 단지 먹는 일인 식사(食事)와 비교할 때 차원이 전혀 다른 낱말이다. 

본 칼럼은 먹거리를 식사가 아니라 공양의 차원에서 쓰려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지만 그 먹거리는 어떤 생명체가 자기의 몸을 주어 나를 기르는 공양이다. 그러기에 감사히 먹어야 한다. 어느 생명체가 죽어서 내준 몸이기에 먹는 일은 희생(犧牲)의 결과다. 우리가 소고기를 먹는 일은 소의 몸이 희생된 결과다. 하얀 밥은 벼의 씨가 땅에 뿌려져 새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껍질이 벗겨져 식탁에 올라온 것이다. 그러한 동식물이 희생되었기에 나는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먹는다면 먹거리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다. 무생물이었던 것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먹거리가 공장에서 생산되어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일지라도 본래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이러한 생각이 매일 먹거리에 관한 인문생태학의 기본사고를 이루게 된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먹거리의 소중함과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데 작은 이바지를 하고자 한다.

언론매체에서도 이와 같은 국민 캠페인을 전개하는데 동참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경제주의에 빠진 인간주의 인문학을 넘는 인문생태학 관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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