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그리 좋은가
“오빠”가 그리 좋은가
  • 한기봉 전문위원
  • 승인 2018.05.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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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여관과 노홍철의 노래 ‘오빠라고 불러다오’ ⓒ 유튜브
▲ 장미여관과 노홍철의 노래 ‘오빠라고 불러다오’ ⓒ 유튜브

“오빠”가 그리 좋은가

물론 나도 “오빠”라고 불리면 기분이 좋다. 머리가 희끗한데도 정말 ‘젊은 오빠’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 여자가 나를 그렇게 부를 때, 그냥 기분 좋은 걸로 끝나는 건 아니다.
그 의도를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해봐라. 평소에 “선배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오빠”라고 한다면? 당연히 깜짝 놀라 쳐다볼 것이다. 오빠? 우리가 그리 친해졌나? 이 아이가 나를 좋아하나? 처음 우연히 알게 된 여자가 당신을 바로 오빠라고 부르며 다가온다면? 그건 더 수상하다. 더 나가서 “오빠 술 한 잔 사줄래요?”라고 한다면? 잠시 갈등에 빠질 것이다. 

오빠. 이 단어는 참으로 오묘하다. ‘손위 남자 형제’는 공식적 사전풀이일 뿐이다. 오빠라는 호칭은 남자들을 기분 좋게 미혹시키는 헷갈리는 단어다. 그래도 이 시대 많은 남자들은 오빠로 불리길 원하고 스스로 오빠가 되고 싶어 안달한다.

▲ 노라조 노래 ‘오빠 잘 할 수 있어’ 노래방 캡쳐 ⓒ 유튜브
▲ 노라조 노래 ‘오빠 잘 할 수 있어’ 노래방 캡쳐 ⓒ 유튜브

# “이제부터 오빠 말 놀게/이름이 뭐랬더라/오빠라고 불러봐/정말 오빨 못 믿니/오빠 빼고는 전부 다 짐승/할래 말래 나랑 사랑 안 할래/나만 따라오라구/오빠 말고는 전부 도둑놈/웬만하면 나랑 사귀어/오빠 잘 할 수 있어/오빠 진짜로 나쁜 놈 아니란다/알고 보면 진국이란다.” (노라조 노래 ‘오빠 잘 할 수 있어’ 가사 일부)

# “나 아직 오빠야/나 오빠로 돌아갈래/배 나온 남자/아저씨라 부르지 좀 말아줘/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왜 나를 괴롭히나/제발 아저씨라 부르지 마/오빠라고 좀 불러다오.”
(장미여관과 노홍철의 노래 ‘오빠라고 불러다오’ 가사 일부)

오빠와 남자는 도대체 어떤 차이일까. 

# “그냥 편한 느낌이 좋았어/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어/하지만 이게 뭐야 점점 남자로 느껴져/ 
아마 사랑하고 있었나봐/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아파 마음이 아파 내 맘 왜 몰라줘/왜 날 여자로 안보는 거니/자꾸 안 된다고 하는 거니/다른 연인들을 봐봐, 첨엔 오빠로 다 시작해/결국 사랑하며 잘 살아가.” (왁스 노래 ‘오빠’ 일부)

여자에게는 시작은 오빠였지만, 끝은 남자가 돼버리는 일이 많은가 보다. 아래 시는 오빠라고 불리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참으로 절묘하게 포착했다.

#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중략)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중략) 오빠라는 말로 한방 먹이면/어느 남자인들 가벼이 무너지지 않으리/(중략) 오빠로 불려지고 싶어 안달이던/그 마음을/어찌 나물 캐듯 캐내어주지 않으랴/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헐떡임이 사라지고/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는/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 (문정희 시 ‘오빠’ 부분)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 오빠! 오빠라고 불러주면 비단구두라도 사들고 쫓아올 사람. 도둑놈 아닌 진국이니 제발 오빠하고 사귀자는 남자. 이 시대 남자들은 왜 그리 오빠라는 호칭에 환장할까. 집에서는 아무 힘도 못 쓰다가 젊은 여자를 보면, 술집이라도 가면 오빠로 돌변하는 남자들. 그 ‘순진한’ 용감함이 불러온 허망한 결과를 자주 목격하는 요즈음, 사내들은 ‘오빠’라는 호칭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오빠’라는 호칭은 편의상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친밀함을 내포한다. 그 안에는 ‘사적 관계’라는 암묵적 함의가 있다. 남녀공학 대학에서는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20세기만 해도 여학생들은 남자 선배나 복학생을 두루 “형”이라고 불렀다. 그건 그냥 젠더적 호칭이다. 아무 감정 없다는 거다. 중립적이다. 그런데 어느 여학생이 어느 남자 선배를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둘 사이는 심상찮은 것이다.
성추행 의혹을 받았던 한 연기자이자 교수는 제자에게 “야, 교수님이 뭐냐? 그냥 다정하게 오빠라고 불러. 아니면 뭐… 자기야라든지”라는 문자를 보냈었다.

오빠와 같은 레벨인 ‘누나’라는 호칭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교회오빠와 교회누나의 어감은 다르다. 누나는 결코 ‘애인’을 대체할 수 없다. 연상의 여자는 남자에게 누나가 될 수 없고 여자일 뿐이다. 이승기는 ‘내 여자라니까’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나를 동생으로만 그냥 그 정도로만 귀엽다고 하지만/누난 내게 여자야/누난 내 여자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남자로 느끼도록 꽉 안아줄게.”

남자가 어린 여자에게 굳이 “편하게 그냥 오빠라고 불러” 하거나, 스스로를 3인칭화해서 “오빠가 도와줄게”라고 오빠 드립을 치는 건 너한테 썸을 타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그럼 반대로 보자. 별로 친숙하지도 않은 여성이 먼저 오빠라고 부르면? 그건 그가 처한 위치나 상황의 열세를 만회하거나 당신의 관심을 유도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수 있다. 

공인된 관계인 애인이나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건 좀 묘하다. 그런 관계는 친밀감을 훨씬 초월하는 특수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빠로 부르는 건 남녀관계가 환기하는 은밀한 성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희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빠도 ‘젊은 오빠’라야 말이 된다. 늙으면 오빠가 안 된다. 나이 든 남편은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다. (문정희의 시 ‘남편’에서)  

오빠라는 호칭 안에는 여자는 남자에게 보호받고 의지해야 한다는 남성의 잠재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관계의 평등성은 이미 기울어진 것이다. “오빠만 믿어. 오빠 빼고 사내들은 다 짐승이고 나쁜 놈이야. 그러니 오빠하고 사귀자”는 설득은 일견 달콤하다. 그런데 그건 기실 자기는 이상한 남자가 아닌 척 구는 ‘착한 오빠’ 코스프레의 혐의가 짙다. 듬직하고 자상한 얼굴을 한 가면 속에 수컷의 욕망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계속 오빠에 집착한다면, 계속 오빠 코스프레를 하고 싶다면 당신은 철들기 어렵다. 그런 오빠는 직장에선 ‘마부장’이 되기 쉽고, 사회에선 ‘개저씨’로 몰락할 소지가 크다. 

다시 문정희 시를 인용한다. 오빠 말고 이런 진짜 ‘사나이’는 없는가.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중략)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중략)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며/검은 눈썹을 태우는/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멸종 위기네.”( ‘다시 남자를 위하여’ 부분)

한기봉 칼럼니스트 (hkb821072@naver.com)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홍보기획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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