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ce Rule’이 ‘Fence Rule’이 된 사회
‘Pence Rule’이 ‘Fence Rule’이 된 사회
  • 한기봉 전문위원
  • 승인 2018.04.05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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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룰’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울타리(fence)’로 이해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미투 태풍을 맞아 유명인사들이 한순간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남성들이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여자들과의 사이에 장벽을 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펜스 룰(Pence Rule)의 펜스는 울타리가 아니다. 미국의 현직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Mike Pence)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연방 하원의원이던 2001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아내 외의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게 펜스 룰로 불렸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폭로를 하고난 뒤 언론은 물론 많은 남성들은  “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두었을까”라고 쑥덕거렸다. 수행비서가 남성이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입방아에는 사내들의 속내가 그대로 묻어난다. “여자는 언제나 문제의 소지가 있어.” 지극히 간편한 사고방식이다. 남성들의 이런 일차원적인 생각이 바로 펜스 룰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펜스 룰은 업무상 접촉이나 회의, 직원 간 소통, 직장 회식 등에서 가능한 한 여성과의 접점을 없애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하지 않겠다는 남성들의 자구책이다. 심지어 여성을 아예 채용하려들지 않거나 여성을 자기 부하직원으로 받는 걸 거부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가해자는 남성인데도 얼마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혔으면 이런 ‘묘수’를 고안해냈을까 하는 마음도 일견 들지만, 이는 정말 저열한, 하수 중 하수다.
 
여성으로부터 떨어지는 것만이 성희롱 성폭력 가능성의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자를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남성들의 자백과 다를 게 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성적 희롱의 대상으로 보거나 대놓고 무시하는 게 아니면 여성과 같이 사는 법, 소통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시인하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서, 한 동료로서 존중하는 마음은 왜 1도 없는 것일까. 스스로를 잠재적 가해자로 인정하는 꼴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했다. 내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사람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여러 여성운동가들이 지적했듯, 펜스 룰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에게는 또 하나의 차별로 작용하며 유리천장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해 성공하거나 직장 내에서 능력을 펼쳐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배제시키고 봉쇄하는 것이다. 비서가 여성이어서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비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데, 여비서와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여비서를 여자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 조사를 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20개 국 가운데 여성 임원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한국으로 2.4%였다. 아프리카 평균보다도 훨씬 낮고 중동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펜스 룰은 아직도 우리 사회나 직장문화가 남성본위적이며 남성의 권력이 절대 우위라는 걸 말해주는 사례다. 직장에 고위직 여성의 비율이 같거나 높다면 감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미투 운동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한국의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함께 성찰하고 반성해야하는 시대적 과제를 던진 것이다. 그런 기회가 많았지만 이번은 그 충격파가 다르다. 미투의 근본적 해결책은 여성을 다른 성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고, 제도적 관행적 성차별 요인을 해소하고, 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뿐이다.   

▲ ‘수작’은 원래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여러 공연 제목에 등장한 ‘수작’
▲ ‘수작’은 원래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여러 공연 제목에 등장한 ‘수작’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에 ‘수작(酬酌)’이 있다. 술집 간판에서 보고 참 운치가 있어서 글을 쓴 적도 있다. 이 말은 원래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술잔 보낼 수(酬)’, ‘술 따를 작(酌)’이다. 두 글자의 좌변에 있는 ‘유(酉)’는 중국에서 술을 의미하는 한자였다. 술단지 형상인데 후에 좌변에 물 수(氵)를 더해 지금의 술 ‘주(酒)’가 됐다. 수작은 주인과 객이 술잔을 권커니 잣거니 하며 서로를 공경하고 대접하는 예의였다. 그 ‘낭만적인’ 수작이 현대에는 수작질이 됐다. ‘개수작’ ‘엉뚱한 수작’ ‘뻔한 수작’이 돼버렸다. 

여성과 ‘수작’할 기회마저 막아버리는 사회는 인간세상이 아니다. ‘작(酌)’은 참 지혜로운 한자다. ‘짐작(斟酌)’은 술을 따를 때 넘치거나 적으면 예의에 어긋나므로 양을 가늠하는 데서 나온 단어다. ‘작정(酌定)’은 짐작을 한 후에 따르는 술의 양을 정하는 것이다. 술이 약한 상대에게는 ‘참작(參酌)’을 해야 한다. ‘헤아릴 참(參)’이다. 짐작하고, 작정하고, 참작하면서 수작을 붙이면 미투도, 펜스 룰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을 따돌리고 왕따를 시키겠다고 하니 한국 남성들은 참 찌질 하다. 낭만도 인정(人情)도 없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의 펜스 룰은 ‘Pence Rule’이 아니라 ‘Fence Rule’이다.

한기봉 칼럼니스트 (hkb821072@naver.com)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홍보기획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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