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초우주인 이소연박사 "나는 우주인 배출 상품"
한국최초우주인 이소연박사 "나는 우주인 배출 상품"
  • 이은광 기자
  • 승인 2018.03.08 2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브즈뷰티 이은광 기자] 3만 6천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됐던 이소연박사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한지 6년이 흘렀다. 일각에서는 수백억 원을 들인 '우주 관광객'이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첫 우주인 배출 이후 후속 연구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예견된 결과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소연(40) 박사는 자신이 "(한국의)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며 우주인 배출사업에 대해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주과학발전의 관점에서는 성공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인 이 박사는 한국인 최초 우주비행 10년을 기념해 과학 잡지 '에피' 3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박사는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통해 2008년 4월8일부터 19일까지 10일간 러시아 소유즈 TMA-12호를 타고 우주에 머물며 여러 실험을 진행했다. 이 박사는 "그때의 저는 우주에 있을 때도 후속사업이 없는지 몰랐고 이후의 다른 계획들이 잡혀 있는 줄 알았다"면서 "귀환해서 우주인 사업이 3년짜리 단기 사업이고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무척 허탈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우주에 다녀온 뒤 "그래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를 만나 이러이러한 실험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귀환 후 우주정거장에서 갖고 온 실험결과를 분석하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우주과학팀이 뭐라도 할 수 있게끔 예산을 따러 돌아다녀야 했다고 소개하면서 "당시의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욱한 것 반, 먼 미래를 계획한 것 반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게 목표였다면 그나마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우주과학을 발전시키는 게 목표였다면 후속 사업도 없고 후속 실험도 안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우주인 배출 사업에 대해 "정책 설계가 부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보다는 정책 설계자와 정책 수행자가 바뀌었고 그래서 목표와 방향이 달라졌던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잡지에는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썼던 일기들이 공개됐다. 당시 우주인 사업을 추진했던 정부 부서의 이름이 '과학기술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면서 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복의 패치를 뜯어내고 새 부서 이름이 적힌 패치를 바느질해야 했고 실험장치에 있던 스티커도 새로 붙여야 했던 일화도 처음 소개된다. 우주에서 멀미와 두통, 소화불량을 겪게 되는 이유, 우주에서 여성 우주인이 생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이 박사에게 맡겨진 우주실험 숙제 등의 이야기 등 우주체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 박사는 2012년 항공우주연구원을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박사는 현재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공대 자문위원 자격으로 학생들의 연구활동을 돕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인공위성 스타트업 기업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강연 등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