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잘 안 납니다.” ①
“기억이 잘 안 납니다.” ①
  • 홍후조 논설위원
  • 승인 2018.02.0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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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국회에 각종 비리 등의 혐의로 불려나온 증인들이 흔히 하는 대답은 “기억이 잘 안 납니다.”였다. 진실이 밝혀질 것을 기대한 국민들은 이에 불신감을 넘어 분노를 드러낸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우리 모두도 완전하고 정확한 기억과 회상은 불가능하다. 엊그제 일어난 일을 시공간의 사건순서대로 정확히 기억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뇌과학은 우리의 뇌가 수많은 경험들 중에서 선별적으로 편집하여 기억을 저장하기에 정확한 기억과 그 회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알려준다. 더구나 그 기억을 회상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은 10분지 1도 안 된다고 한다.

필자는 새 학기 수업시간 초반부에 대학생들에게 묻곤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학교에 입학하느냐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5-6세에 입학했다고 대답한다. 그럼 왜 하필 만5-6세에 입학을 하느냐고 또 묻는다. 대부분 이에 대답하지 못한다. 해답은 우리는 ‘기억을 자기관리하기 시작할 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렇다! 인간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매우 위험했던 경험, 억울했던 일, 매우 슬퍼했던 사연 등을 또렷이 기억하고, 언젠가 유사한 사태를 당했을 때 피해갈 수 있어야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슬픈 기억, 불행했던 기억 등으로 점철되는 지도 모른다.

교육은 기억에서 시작하고 기억에서 끝난다. 흔히 4~5세까지 우리의 기억은 거의 모두 지워진다. 쌓일 곳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그 나이의 아가들에게 기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억은 부모나 조부모 몫이다. 아가들은 기억의 불완전성으로 아직 사람의 대열에 본격적으로 끼지 못한다. 필자는 이를 젖먹이의 망각이라고 하여 ‘유망(乳忘)’이라고 명명한다. 그렇지만 무의식을 말하는 이들은 어릴 때의 경험이 쌓이는 것 중에서 ‘애착’을 강조한다. 부모와 아가 사이에 형성하는 심리적 안녕감, 이 세상을 살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유대가 우리의 평생을 지탱해주는 바탕이 된다. 오늘날 부모의 잦은 이혼과 불화 등으로 한 개인의 인생이 뿌리째 흔들리고 사회의 건강성도 훼손된다. 인생의 끝을 보면 여기에도 기억의 불안전성이 나타난다. 심지어 알츠하이머 등 치매는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아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결국 우리의 교육은 결국 ‘유망과 노망 사이’에 이루어진다.

기억은 주로 뇌와 우리 몸속 구석구석에 속에 저장된 그 무엇이다. 우리의 뇌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육체적 생명과 생존에 가장 중요한 뇌수가 가장 깊은 1층이고, 정서와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2층이며, 기억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나중에 급격히 발달하는 전두엽이 3층이다. 1층은 파충류 뇌, 2층은 포유류 뇌, 3층은 인간다운 인간의 뇌라고 불린다. 인간의 뇌는 인간다운 인격(지혜, 감정, 의지), 자율성, 사회관계성 등을 관장한다. 미래에 대한 기획이나 각종 상징의 개발,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 등은 모두 전두엽의 소관사항이다.

인간의 뇌를 시간 면에서 보면 뇌수는 위기와 위험에 대처하는 현재의 뇌이고, 해마는 기억을 관리하는 과거의 뇌이며, 전두엽은 미래의 뇌이다. 교육은 이에 각각 체력 단련, 감정과 의지의 수련, 지식과 기술의 개발로 대응한다. 이것은 일종의 기초 기본 교육의 순서이기도 하다. 가령 각종 운동 중에 생명을 좌우하는 수영은 필수로 가르쳐져야 한다.

인간교육의 가장 기본은 건강한 생활과 즐거운 생활(줄여서 건생과 즐생)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이다. 유치원 유아교육의 첫출발은 ‘건생과 즐생’이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며, 노인교육의 마무리도 ‘건생과 즐생’이다. 일요일 정오에 송해 선생이 “전국~ 노래자랑~!”하고 외치면 시작되는 노인들의 춤과 노래는 ‘건생과 즐생’의 존재를 잘 드러낸다. 1층과 2층을 잘 다지고 3층을 다지는 일은 좀 늦추어도 된다. 아가와 노인에게 3층 뇌는 거의 필요가 없어 아직 생겨나지 않고, 생겼던 것도 점차 허물어진다. 결국 교육은 건생과 즐생에서 시작하여 그 사이를 바른 생활과 슬기로운 생활로 채우게 된다.

필자 : 홍후조
        고려대 교수,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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