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냐, 스타일이냐
패션이냐, 스타일이냐
  • 한기봉
  • 승인 2017.12.11 1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영화 코코샤넬 스틸컷

평생 혼자 가장 많이 중얼거리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오늘은 무얼 먹지?” “무얼 해 먹을까?”가 아닐까. 매식을 하는 직장인이나 살림을 하는 주부나 끼니때마다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먹는 문제만큼 또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오늘은 무얼 입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의식주 가운데 주거는 일정하지만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다르다. 늘 같은 음식을 먹거나 같은 옷을 입을 수는 없으니까. 그중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인과 함께 하는 것은 옷이다. 발가벗은 채로 관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많은 이들이 때가 오면 마지막 입고 떠날 옷도 미리 결정한다. 

매일 같은 옷을 입기 싫은 인간의 욕구는 필연적으로 ‘패션’을 창조했다. 그리고 패션은 그 시대상황이나 사회정서에 따라 ‘유행’을,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는 ‘스타일’을 만들었다. 옷장 앞에 서서 거울을 보며 우리는 오늘도 고민하고 내일도 고민할 것이다.
정장이냐 캐주얼이냐, 바지냐 치마냐, 빨강이냐 검정이냐, 편안하게 아니면 꽉 조이게, 우아하게 아니면 섹시하게, 심플하게 아니면 럭셔리하게…. 옷장 앞에는 선택받지 못한 옷들이 수북이 쌓여간다.

▲ 패션지 보그의 표지 모델로 나온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옷의 운명은 보이고 보여주는 것이다.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내 인격과 재능과 관계없이 나의 첫 인상과 이미지를 결정짓는 것은 단연코 나의 ‘옷차림’이다. ‘옷’은 사회적 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한 패션이다. 그런데 옷에는 ‘차림’이 있다. 차림은 좀 다르다. 그건 좀 개인적 공간이다. 그 사람이 지닌 스타일이다.  

스타일의 어원은 옷이 아니었다. 기원전 이집트인들은 말린 파피루스 식물에 갈대 끝을 뾰족하게 깎아 그림이나 문자를 쓰곤 했는데, 그걸 ‘스타일러스’(stylus)라고 했다. 그 뜻이 살아남아 지금도 터치스크린에 글을 쓰는 뾰족한 펜을 스타일러스 펜이라고 한다. 
글쓰기 도구인 스타일러스가 발전해 글 속에 드러난 작가의 생각과 문체를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즉 스타일은 글로 표현하는 방법인 수사학에서 출발한 것인데, 점차 범위가 확대돼 말하는 스타일, 옷 입는 스타일, 살아가는 스타일, 강남 스타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기실 옷을 입는 행위와 글을 쓰는 행위는 사실 여러모로 닮았다. 글쓰기란 결국 오랫동안 자기 내면세계에서 자라온 감정과 사유와 통찰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어려워서도 안 되고 미사여구로 넘쳐도 안 된다. 읽기 쉽고 간결해야 한다. 개성 있는 표현과 문체, 지루하지 않은 구성으로 읽는 재미와 긴장을 주어야 하며 메시지와 여운을 남겨야 한다. 
여기서 글이란 단어를 옷으로 바꿔보면 의미가 똑같이 통한다. 옷은 어찌 보면 그냥 ‘입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 ‘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라다그룹은 신상품을 론칭할 때 그 상품과 관련한 글쓰기 공모전을 여는 독특한 마케팅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악마도 사랑한 프라다의 수석디자이너이자 오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입은 건 세상을 향해 당신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패션은 그 자체로 언어다.”(What you wear is how you present yourself to the world. Fashion is an instant language.)

결국 ‘스타일’이란, 그 단어의 생성부터 취향이자 개성의 문제였다. 그래서 패션이 사회적 현상이라면, 스타일은 인간내면의 문제다. 자신이 만들어낸 미적 방식이다. 관습과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꾸미는 것이다. 패션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면이 강하다면, 스타일은 나 스스로가 만족하고 기쁜 것이다. 그냥 자연스레 풍기는 것이다. 스타일은 옷을 ‘잘 입고, 못 입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다, 없다’의 문제인 것이다. 

패션과 스타일에 관한 한 가장 고전적 명언이 있다.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Fashion fades, style remains the time.) 
패션의 속박에서 인간을 구원한 코코 샤넬의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스타일이 없는 것보다 차라리 천박한 스타일이 낫다.” 

패션디자이너들은 패션을 창조하고 리드하지만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뇌해온 예술가들이다. 여기, 패션의 역사를 써온 디자이너들의 어록을 곰곰이 씹어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사람들은 내가 옷 입은 모습을 보고 비웃었지만 그게 바로 내 성공비결이었다. 나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코코 샤넬)
“패션은 하늘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다. 패션은 인간의 관념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상사다.”(코코 샤넬)
“우아함은 거절이다.” (코코 샤넬, 우아함은 더 넣을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뺄 게 없는 최고 절제의 상태라는 의미)  
“스타일 없는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이브 생 로랑)
“우아함은 눈에 띄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다.”(조르지오 아르마니)
“우아하다는 것은 옷차림이 아니라 품성과 매력에 대한 문제다.”(장 폴 고티에)
“비교를 멈출 때 개성이 시작된다.”(칼 라거펠트)
“블랙에는 무수히 많은 색상이 존재한다.”(이브 생 로랑)
“여자는 편한 옷을 입었을 때 가장 섹시하다.”(베라 왕)
“여성들은 원초적으로 섹시한 존재다.”(알렉산더 맥퀸,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패션을 죽이는 건 바로 망할 놈의 로고다. 로고는 패션을 광고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그건 패션이 아니라 상표다.”(알렉산더 맥퀸)
“덜 사라, 그리고 잘 골라라.”(비비안 웨스트우드) 
“당신이 정말로 싫어하는 상대를 만나러 갈 때처럼 늘 입어라.”(키모라 시몬스)
“자신에 대한 자신감, 그게 패션이다.”(폴 스미스)
“패션은 느낌이다. 이유가 있어서는 안 된다.”(크리스찬 디올)
“패션이란 결코 새로운 것이 없다. 모두 다 헌 것이다.”(제프리 초서) 
“당신이 당신을 정의하고, 옷 입는 방식과 생활방식으로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라.”(지아니 베르사체)
“내가 파는 것은 옷이 아니라 꿈이다.”(랄프 로렌)
“여자를 시크하게 만드는 것은 아름다워지려고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는 태도다.”(캐롤리나 헤레라)
“아름다움은 태도의 문제다. 화이트 셔츠 하나를 입어도 소매를 어떻게 접느냐, 단추를 어떻게 채우느냐 하는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이 표출된다.”(프란치스코 코스타)
“시크하다는 것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코트를 다르게 여미거나 팬츠를 조금 짧게 입는 식 같은 것이다.”(소니아 리키엘)
“패션이 정치보다 중요하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 연설보다 재키의 옷에 더 집중한다.”(존 F 케네디)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hkb821072@naver.com)
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전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전 한국온라인신문협회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