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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눈물에서 발견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인간은 아름답습니까?

1

나이지리아 내전 

나이지리아 내전은  북부 하우사족 이슬람과 남부의 이보족 기독교 간의 갈등으로 시작되었다. 막대한 유전을 바탕으로 성장한 이보족은 독립을 주장하며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웠고 이슬람이 장악한 정부군은 독립을 반대하며 대대적인 소탕에 들어갔다. 

1967년에서 70년까지 200만명이 죽었으며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의 이면에는 유전 장악이라는 욕망이 있었다. 나이지리아의 저명한 작가이자 환경 투사, 저항운동가였던 사로위와는 정부군에 의해 처형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석유는 우리의 저주다."

 

옳고 그른쪽도 없다. 선과 악도 없다. 1960년 독립 이후부터 북부지역을 거점으로 이슬람 하우사족이 구부를 장악해 권력을 독점했고 1966년 기독교 이보족 중심으로 군부쿠데타가 발발하여 발레와 초대 민선총리를 암살하고 정권을 잡았다. 그 해 7월 역쿠데타가 발생하여 하우사족이 이보족에 대한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이보족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투쟁에 나선 것이 나이지리아 내전의 시작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였고 서로가 옳았다.   

 

 

 

2

태양의 눈물

영화 태양의 눈물은 나이지리아 내전에서 부터 시작된다. 미국은 자국민의 소개를 위해 네이비씰 특수부대를 파견하고 워터스(브루스 월리스)는 리나 켄드릭스 박사(모니카 벨루치)를 데리고 가기 위해 나이지리아에 침투한다. 선교사들과 함께 마을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돌보던 리나 박사는 마을 사람들을 두고는 떠날 수 없다고 우기고 워터스는 어쩔 수 없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헬기와 조인하기로 한 장소까지 이동한 워터스는 난민들을 버려두고 리나 박사만을 헬기에 태우고 떠난다. 워터스는 복귀하던 중 반군이 휩쓸고 간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워터스가 리나 박사와 난민들을 데리고 떠났던 마을이었다. 워터스는 기장에게 헬기를 돌리라고 명령한다.

상부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영화에서의 반군은 분리독립을 주장한 이보족이다. 나이지리아는 독립 후 내내 이슬람의 하우사족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보족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우사족은 역쿠데타를 일으켜 이보족을 대량학살한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투쟁에 나선 이보족 입장에서는 워터스가 보호하는 난민들은 자신의 동족을 무참히 학살했던 적이다. 난민들은 한때 이보족을 무참히 학살했던 가해자들이었다.

난민들을 데리고 탈출하자고 주장한 리나 박사에게 워터스는 말한다.

 

"남의 땅, 남의 전쟁이오" 

 

그런 워터스가 선과 악이 모호하고 옳고 그름도 없는 혼돈속에서 방관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명쾌함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워터스는 헬기에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을 태워 보내고 부대원들과 함께 난민들 속에 남았다. 리나 박사와 난민들을 카메룬 국경까지 탈출시키려는 워터스에게 부대원들은 의구심을 품는다. 그들은 이제 바로 직전까지의 워터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난민 행렬이 반군의 추격을 받고 급기야 난민 틈에 살해당한 대통령의 후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부대원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자국민을 보호하라는 명령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까지 떠앉아야 되는 이 복잡성을 자처하는 이유가 알고 싶던 부대원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진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난민들을 데리고 이동 중에 부대원들은 한 마을을 습격하는 반군을 발견한다. 워터스가 대워들에게 반군소탕을 명령하자 부대원 중 하나가 물었다.  

 

"우리가 왜 반군들과 싸워야 합니까?"

워터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부대원들은 쌓아놓은 시체, 강간,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인의 젖가슴을 도려내는 잔인함 그리고 그 잔인함에 취한 소년병을 마주한다.

그들도 한때 피해자였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절망하고 분노한 사람들이었다. 분명 어느 시점부터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 것 뿐이고 그 혼란스러움에서 인간으로서 솔직해진 것 뿐이다.

자신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원수를 유린하는 것이 반군의 솔직함이었다면 워터스와 부대원들의 솔직함은 상관도 없는 이들을 무시하고 방관하는 것이었다. 

 

 

워터스와 대원들은 반군을 소탕한다. 솔직해지는 것에 저항했다. 강간을 당하든 젖가슴이 도려지든 침묵하면 된다. 그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한지 알게 된다. 

이슬람 하우사족이 기독교 이보족을 박해한 것도, 그에 반기를 들어 총을 든 이보족도, 그런 이보족을 학살 한 것도, 학살당한 이보족이 분노하며 복수를 하는 것도, 이들에게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대원들의 목소리도 모두 현실적이다. 차라리 이성적이다. 논리적이다.

남게 되는 것은 그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또 추악한지에 대한 실체일 뿐.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고자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라고 소리치고자 했을 때는 이미 그 자신들이 반군과 다를바 없게 되어버리는 역설에 갇혀버린다. 

 

 

3

아름다움의 추구

왜 워터스는 리나 박사만 데리고 탈출하지 않았을까? 왜 그들은 난민들을 보호했으며 자신들을 희생해가며 그들을 카메룬 국경까지 지켜냈던 것일까? 왜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마을을 습격 중인 반군과 싸워 마을 사람들을 구했던 것일까?

워터스가 난민들을 데리고 마을에서 출발할 때 마을에 남기로 결정한 신부가 신의 가호를 빌자 워터스는 실소를 하며 말한다. 

 

"신은 이미 아프리카를 버렸다."

 

우리가 얼마나 추한 존재인지 직시해야 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남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결국 우리를 만들었을 거라 믿는 신을 원망하게 된다. 그 절망감을 신에게 돌린다. 

 

 

우린 더럽고 추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던 워터스는 어느 순간 저항하기로 했다. 부정하기로 했다. 인간은 사실 아름다운 존재라고 증명하려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들과 다를바 없어졌다. 

 

우린 왜 아름다워지려고 하는가?

사실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우린 왜 선의를 외칠까? 왜 우리는 타인을 도우려 할까? 왜 우리는 화장을 하거나 성형을 하거나 예쁜 옷을 겉에 두를까?

왜 우린 그토록 아름다워지기 위해 발악을 할까?

 

"아름다워지면 우린 아름다울까?" 

 

 

 

*내전 이후에도 나이지리아는 1999년 대까지 총 4번의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1999년 5월 민간정부가 출범함으로 군부독재를 청산하는 전기를 맞이했다. 

 

Beauty Explorer. Patrick Jane

*사용된 이미지는 모두 영화 '태양의눈물'의 스틸컷입니다.

 

 

Patrick Jane  press@lovesbeau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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