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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그 사소한 것에 대하여

사소한 게 사소한 게 아니다. 사소(些少)의 국어사전 풀이는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이다. 
하지만 그 ‘보잘것없음’에 대해 쓴 책들은 왜 이리 많을까.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봤다. 

‘사소한 것들로부터의 위로’ ‘사소한 것의 사랑’ ‘아주 사소한 중독’ ‘사소한 연애’ ‘사소한 시간의 재발견’ ‘가장 사소한 구원’ ‘사소한 것들의 거룩함’ ‘위대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만든 사소한 사물들’ ‘사소한 말 한 마디의 힘’ ‘사소한 결정이 회사를 바꾼다’ ‘왜 나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낼까?’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등등.

맞다. 이쯤 되면 사소한 게 그냥 시시한 게 아니다. 살다보면 우연히도 이 사소한 것들-소품이든 음식이든 풍경이든-에서 위안을 받거나 행복을 느끼거나 깨달음을 얻은 순간들이 있다. 
늘 쓰던 찻잔 하나에서, 자주 먹던 된장찌개 한 그릇에서, 계절이 변하면서 느낌이 바뀐 한 줄기 바람에서, 바닷가에 지는 노을에서…. 타인의 사소한 언행에서도 그렇다. 말 한 마디에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 사람의 인간미를 느끼기도 한다.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일을 보러 갔다가 어떤 사소한 물건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사소한 주인공은 ‘단추’였다.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라는 제목이었다. 참 특이한 전시회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둘러봤다. 

작고 평범한 소재인 단추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와 문화, 사회와 개인의 삶이 녹아 있었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들을 보는 기쁨과 그것들이 주는 생각이 의외로 컸다. 전시회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었다. “이 작은 단추를 진지하게 살피는 일은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흥미로운 도전입니다.”  

18세기 프랑스의 화려한 궁정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진귀한 단추들은 복식의 기능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장식이었다. 단추는 프랑스 혁명의 구호를 담은 정치적 메시지가 되기도 했다. 1894년 프랑스 역사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에서 그에게 가장 먼저 내려진 선고는 단추와 계급장을 뜯어낸 것이었다고 한다. 산업화가 되면서 단추는 부르주아 소비문화의 규범이 되었고 댄디즘이나 아르누보 같은 새로운 문화의 표현 수단이 되었다. 단추 한 개에도 주인의 욕망과 감성이 담겨있다. 한 개인이 평생을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

단추도 진화했다. 단추는 20세기로 넘어와 패션과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던 복식이 사라지면서 단추는 단지 옷을 여미는 부자재로서의 기능을 넘어섰다. 몸의 실루엣을 살리거나 옷의 균형을 잡거나 변형을 주거나 포인트를 주는, 중요하고 독창적인 패션의 요소가 되었다. 디자이너들은 단추에 주목했고 단추는 패션의 매력적 소재가 되었다. 누군가는 단추를 ‘옷의 화장품’이라고 했다. 

단추라는 미시적 세계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뒤져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다. 대량생산해내는 공장 사출단추 말고는 똑같은 단추가 거의 없다. 소재, 빛깔, 디자인, 여밈의 방식, 제조 방식, 단추를 다는 위치가 제각각 다르다. 단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금실 비단 보석 금속 자개 나무 고무 조개 뿔 상아 폴리 헝겊 유리 등등. 제조 방식도 사출단추부터 도금단추 코팅단추 에폭시단추 등등. 

단추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든 단추는 자체가 예술품이다. 짝퉁을 가려낼 때 의외로 단추로 판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급 브랜드의 단추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기도 한다. 복제 불가능이다. 10원짜리 셔츠 단추부터 보석으로 만든 수십만 원대의 고가 단추도 있다. 단추만 파는 전문 매장도 여럿 생겨났고 단추 전문 디자이너도 있다.

단추 구멍 모양도 다르다. 봉제공장에서는 보통 재킷이나 블라우스에 사용하는 단추 구멍은 큐큐라고 부르고, 셔츠나 블라우스용은 나나인치라고 한다. 일본 재봉틀 제작 순서에서 나온 일본말인데 번호 71, 99를 말한다.  

단추의 여밈 방식(placket, 옷트임)도 여러 가지다. 여밈 부분을 따로 재단해서 셔츠 앞판에 붙여 박음질하는 가장 기본적 형태를 스탠더드 플래킷(standard placket)이라 부른다. 플래킷 부분이 따로 재단되지 않은 건 프렌치 플래킷(french placket)이라 하는데 단정하고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여밈 부분을 천으로 한 번 더 덮어 단추가 보이지 않게 한 디자인은 플라이프론트 플래킷 (flyfront placket)이라고 한다. 포멀한 턱시도나 드레스 셔츠에서 사용된다. 

단추의 세계에서 아직도 논쟁으로 남아있는 게 있다. 남자와 여자의 단추 위치는 왜 반대인가 하는 질문이다. 여러 설이 있다. 인간의 70% 이상은 오른손잡이라고 한다. 여성의 모유 습관, 하녀가 귀족의 부인들에게 손쉽게 옷을 입혀주기 위해서, 남성이 쉽게 칼을 뽑기 위해서, 남녀불평등의 시각에서 여성 옷을 구별하기 위해 단추 위치를 다르게 만들었다 등등. 여러 이론이 있지만 정설로 굳어진 건 없어 보인다.

단추는 우리네 삶이었다. 단추하면 반짇고리가 생각난다. 우리 어머니들은 단추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반짇고리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바늘 실 골무 가위 자 조각헝겊이 가득한 요술그릇이었다. 각이 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화조나 십장생 문양을 조각하거나 채색한, 나무나 자개로 만든 것은 참 아름다운 규방 소품이었다. 

단추는 성적 이미지도 있다. 단추는 몸의 방어이자 해방이다. 가릴 것인가, 노출할 것인가는 단추에게 달렸다. 셔츠나 블라우스 단추를 끝까지 정갈하게 여민 사람, 무심한 듯 한두 개를 풀어 젖힌 사람은 주는 메시지가 다르다.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의 단추를 푸는 장면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단추를 잠그며 하루를 시작하고 단추를 풀며 하루를 마감한다. 사소한 단추 하나가 실밥이 풀려 떨어져나가면 의외로 낭패를 본다. 평생 동안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여러 번 한다. 그걸 첫 단추를 끼운다고 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를 풀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퍼와 달리 단추에는 순서가 있다. 그래서 시인들의 눈에는 단추라는 작은 놈이, 단추를 여미고 푸는 사소한 행위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가 보다.

한기봉  love@lovesbeau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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