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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맨스와 워맨스
▲ 브로맨스 영화로 꼽히는 ‘불한당’ 한 쪽이 희생한다.

요즘 대중문화는 ‘브로맨스’ 천지다. 영화와 드라마가 그 진원지다. 브로맨스 콘셉트가 없으면 관객도, 시청률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브로맨스(bromance)는 ‘brother’와 ‘romance’를 합친 단어다. 단어를 조합해서 기상천외한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 네티즌들이 만든 신조어는 아니다. 미국에서 수입해온 말이다. 브로맨스는 남성 간의 특별한 감정이나 관계를 뜻한다. 우정이란 말로는 좀 부족하다. 우정보다 강력한 친밀감, 동지애, 애틋함 같은 거다. 

드라마에서는 대표적으로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송중기)와 서대영 상사(진구), TV 예능 프로에서는 ‘삼시세끼-어촌편’에서의 차승원과 유해진 같은 찰떡궁합이 브로맨스다. 두 명이 아닌 다수의 브로맨스도 많다. ‘런닝맨’이나 ‘무한도전’ ‘꽃보다 청춘’ 같은 프로그램이다. 

영화에서의 브로맨스 역사는 길다. 과거에 흔히 ‘버디 무비’(buddy movie)라고 불렀던 영화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를 꼽자면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내일을 향해 쏴라’(1969년. 조지 로이 힐 감독)가 생각난다. 은행털이 공범인 두 사내는 포위망이 좁혀오자 모든 걸 포기하고 함께 운명을 맞는다.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밖을 향해 멋지게 뛰쳐나가며 온몸에 총탄세례를 받는다.

브로맨스에서 두 남성의 관계는 상하관계든 동료든 공범이든 적이든 형제든 중요하지 않다.  두 남자의 처지가 대척점에 서있을 때 브로맨스는 더 빛을 발한다. 형사와 범인처럼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가해자와 복수를 하는 자, 동료지만 정의와 불의의 다른 길을 가는 자,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 권력자와 민초, 왕과 신하 같은 설정이다. 그런 대립적 관계에서 묘하게 브로맨스가 피어나고 극에 긴장과 반전을 준다. 

그래서 특히 거친 사내들의 세계를 그리는 느와르 영화에 브로맨스 설정이 유독 많다. ‘영웅본색(1986, 오우삼 감독)’이나 ‘신세계’(2012, 박훈정 감독) 같은 영화다. 올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히는 ‘청년경찰’ ‘부라더’ ‘꾼’ ‘7호실’도 브로맨스 설정이다. 최근 열혈 팬들이 대도시 상영관들을 대관해서 다시 보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적 느와르 ‘불한당’(변성현 감독)은 브로맨스의 결정판을 보여주었다. 교도소에 위장잠입한 신참 형사 임시완과 조폭의 2인자 설경구. 그 둘은 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끌린다. 

▲ 워맨스와 여성 동성애 영화 ‘아가씨’. 여성끼리 자유를 함께 쟁취한다.

브로맨스가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유행하니 요즘 그 반대인 ‘워맨스(womance)’가 등장했다. ‘woman’에 ‘romance’를 붙인 말이다. 영화 드라마 예능에서 워맨스 콘셉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영화로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워맨스의 정점이 아닌가 싶다. 종영한 예능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여자 연예인들이 함께 꿈을 이뤄가는 포맷이다. 한동안 TV에 출연하지 않은 과거의 스타들을 불러낸 여성 투톱 드라마의 부활에도 워맨스 코드가 있다. 고소영-조여정의 ‘완벽한 아내’, 김희선-김선아의 ‘품위 있는 그녀’ 등이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생겨난 ‘걸크러쉬(girl crush, 여성이 특정한 여성을 동경하고 선망하는 것)’ ‘센 언니’의 트렌드도 그 본질은 워맨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워맨스의 고전으로는 그 유명한 페미니즘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3년, 리들리 스콧 감독)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양을 향해 쏴라’의 여성 버전쯤 된다. 주인공들이 공범 관계이며 함께 극적인 운명을 맞는 마지막 정지 화면도 비슷하다. 살인 공범인 수전 서랜던과 지나 데이비스는 경찰에 쫓겨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자 “우리 절대 잡히지 말자. 가자. 밟아”라며 절벽을 향해 힘차게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두 남자와 두 여자는 그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세상과 맞서다 결국 동반 죽음을 통해서 갈망하던 자유를 얻는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브로맨스와 워맨스는 투톱이라는 기본 설정은 같지만, 그 둘의 관계를 지탱하는 정서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에서 공통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브로맨스의 핵심 코드는 ‘의리’와 ‘희생’이고, 워맨스의 핵심은 ‘공감’과 ‘연대감’이 아닐까 싶다. 그건 결국 남자-남자, 여자-여자관계의 정서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영화 ‘불한당’에서 설경구는 임시완이 형사라는 사실을 안 후에도 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변하지 않는다. 그 둘은 결국 죽고 죽여야 하는 막바지 상황으로 치닫는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형이 죽어.” 하지만 조폭 보스가 된 설경구는 임시완에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대신 희생을 택한다. 의리와 희생을 돋보이기 위해 영화는 배신을 복선으로 깐다. 

범죄조직과 경찰의 대결을 그린 멋진 느와르 ‘신세계’에서도 조직의 보스 황정민은 부하 이정재가 형사인 줄 알면서도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다. “독하게 굴어. 그래야 네가 살아.” 

의리는 남성성이다. 남성적 가치다. 남자들이 사랑 대신 의리를 택하는 걸 여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범죄도 의리가 끼어들면 미화된다. 남성들의 세계에서 의리 없는 놈으로 소문이 나면 그건 사회생활에서 낙인찍히는 것과 같다. “의리가 밥 먹여주나”라는 자조적인 말은 역설적으로 남성들이 의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김보성은 아직도 많은 CF에서 “으리”를 외친다. 

여성은 의리보다는 공감에 가치를 둔다. 여성들은 쉽게 공감하고 연대한다. 거기엔 동병상련이라는 정서가 있다고 본다. 권력도 물리적 힘도 경제적 여유도 남성에게 뒤지는 여성을 연대하는 고리는 억압받고 불평등하고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동병상련이다. 지난해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에서 여성들이 보여준 전국적인 집단시위는 그걸 확실하게 증명했다. 여혐의 온상인 일베를 미러링하는 메갈리아도 마찬가지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죽음을 예견한 델마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너와 함께여서 기뻐.” 

워맨스 영화에는 브로맨스 영화와 달리 배반이나 대립이나 희생의 설정은 대체로 보이지 않는다. 공감하고 수용하고 운명을 함께 개척해 나간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식상한 콘셉트가 아니다. 영화 ‘아가씨’에서 아가씨 김민희는 하녀 김태리에게 말한다. “내 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두 여자는 신분을 뛰어넘어 변태와 탐욕의 남성에 대항해 자유를 쟁취한다. 

여성의 공감은 사랑으로 발전하기 쉽다. ‘아가씨’는 워맨스이자 동성애다. 반면 브로맨스는 아직은 남성 동성애와 우정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다. 혹자는 한국의 브로맨스 영화가 남성 동성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정이나 의리로 에둘러 포장한다는 비판도 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브로맨스와 워맨스는 보편적 현실과는 큰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진학에서부터 취업까지 경쟁의 구도는 심해지고, 살기는 팍팍해지고, 1인 가구가 2인 가구를 추월하고, 혼자 술 마시고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는 시대다. 연애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런 시대에서 브로맨스와 워맨스는 스크린과 TV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자 대리만족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hkb821072@naver.com)
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전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전 한국온라인신문협회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한기봉  love@lovesbeau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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