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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미남의 은퇴에 바치는 헌사

#1. “나이가 나이니 만큼, 경력을 쌓을 만큼 쌓았다. 이제 영화 한 편만 마치고 연기 인생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경력은 끝날 것이다. 복싱 경기에서 오래 싸운 걸 후회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나에게 과도한 싸움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는 5월 초 이렇게 은퇴선언을 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그의 삶과 닮은 스토리일 거라고 한다. 상대 배역은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다.

#2. 외국의 어느 매체가 뽑은 잘 생긴 세계 지도자 7명 안에 든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인터뷰에서 외모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학 시절 그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좀 들었다. 덕분에 아내와 소개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인 김정숙 여사는 “친구의 오빠가 그 배우를 닮은 친구라며 남편을 소개해줬다. 첫 만남 때 남자가 양복 정도는 입고 올 줄 알았는데 이상한 초록색 점퍼에 회색 바지를 턱 입고 와서 별로였다”고 회상했다.

#3. 그의 얼굴을 TV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10년 전이다. 2007년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다. 사회자로부터 “여자를 사랑한 남자”로 소개받은 그가 무대에 올라 동양의 가냘픈 여인에게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겼다. 그리고 그녀의 뺨에, 손등에 입을 맞췄다. ‘밀양’의 전도연은 그의 키스를 받은 여인이 됐다. 그의 나이 72세. 세월의 더께는 어쩔 수 없는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나에겐 그의 청춘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지금의 청춘남녀에게는 아마도 낯선 이름일 것이다. 요즘 말로 수퍼핵존잘쯤 될까. 나의 세대에겐 영원한 ‘장동건’이다. 잘 생긴 남자는 다들 그를 닮았다고 했다. 그는 미남의 보통명사였다. 

미남 배우의 자원이 별로 없을 때였다. 지금이야 자기 취향에 따라 이름을 댈 만큼 많지만 당시는 아마도 신성일이나 남궁원 정도였을 게다. 할리우드 배우로는 제임스 딘이나 로버트 레드포드, 그 위로 좀 올라가면 클라크 게이블, 그레고리 펙, 록 허드슨, 몽고메리 클리프트 정도가 지금의 중장년 여성들이 극장에서 숨죽이고 탄식하며 사랑한 배우들일 것이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 82). 그가 은퇴한다는 뉴스에 무상함을 느낀다. 그는 잘 생겼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남자,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뿜어내는 얼굴, 얼굴과 표정과 몸짓이 뒤섞여 뿜어내는 그의 총체적 아우라는 그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였다. 삐딱하고 거친 영원한 청년의 우상, 제임스 딘과는 또 다른 차원에 있었다.

글로 표현해보고 싶다. 회색빛 도는 깊고 촉촉한 푸른 눈에 서린 우수와 욕망, 가지런하면서 강렬한 눈썹, 감정에 따라 미묘하게 떨리는 짙게 드리운 긴 속눈썹, 존재를 자만하는 듯 높고 당당하게 솟은 콧날, 꽉 다문 얇고 비정한 윗입술, 깎은 듯 각이 선 서늘하고 여린 턱선. 그의 얼굴은 조각이자 그림이었다. 얼굴 그 자체만으로 스크린을 뒤흔들었다. 얼굴이 곧 연기였다. 

이제 어쩌다 주말의 명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우수에 젖은 그의 눈빛은 뇌리에 박혀 오래 가슴앓이를 하게 한다. 웃는 모습마저 우수가 깔려있다. 아무리 강인한 남자나 살인자를 연기하더라도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무심하고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를 따를 배우는 없을 것이다. 다정하게 유혹하는 듯하지만 왠지 진심이 없어 보이고 어디 한 구석이 빈 것 같다. 그는 태생부터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얼굴이다. 우울 음울 허무 무관심 반항 냉소 냉철 폭력 사악 본능 야망 욕망 퇴폐...그에게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거기에 거역할 수 없는 육체적 관능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 멜랑콜리, 시크, 쿨 그 자체다.

그를 추억할 때 꼭 해야 하는 말이 있다. 그는 영화 사상 항상 가장 멋지게 죽는 남자였다. 갑작스런 죽음이나 파멸이 대체로 라스트 신이었다. 그는 최후를 짐작한 듯 못 한 듯 무심히 걸어간다. 푹 눌러쓴 중절모에 트렌치코트 깃을 올리고. 또는 푸른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무방비 상태다. 그러다 운명처럼 느닷없이 최후를 맞는다. 그처럼 쓸쓸하고 강렬한 장면은 없다. 그는 그렇게 멋있게 죽어줘야 했다. 그가 연기한 죽음의 표정은 그 어떤 배우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 느와르의 거장들은 그에게 영원한 빚을 졌다. 

잊을 수 없는 표정이 있다. ‘암흑가의 두 사람’(1973년, 호세 지오바니 감독)의 마지막 장면.  손은 묶이고 흰 셔츠의 목 부분은 동그랗게 잘린 채 담배를 물고 거대한 기요틴(단두대)을 응시하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빨려들 것 같은 슬프고 두렵고 허망한 눈망울로 관객을 응시한다. 이어 검은 보자기가 얼굴에 씌워지고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덜컹 하는 소리만 남는다.(이 영화의 덕인지 개봉 4년 후 프랑스에서는 기요틴이 사라졌고 그 4년 후 사형제도도 폐지됐다.)

무명의 25세였던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태양은 가득히’(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 니노 로타의 그 유명한 주제곡을 어쩌다 듣게라도 되면 내 청춘이 신음한다. 이글거리는 태양, 나폴리의 푸른 지중해. 웃옷을 벗어젖힌 채 하얀 요트의 키를 잡고 바다를 응시하는 청년 톰 리플리. 신분상승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던 젊음의 비극적 에필로그. 그 기막힌 반전의 미학. 이 영화는 거짓을 진짜로 믿는 심리상태를 말하는 ‘리플리 신드롬’이란 용어를 탄생시켰다. 제목은 얼마나 멋들어지는가. 원제(Plein Soleil) 자체도 그런 의미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장 멋진 영화 제목 중 하나다. 

그의 얼굴은 비정하지만 고독한 하드보일드형 킬러로 연기할 숙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만큼이나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했다. 그는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온전히 사랑할 수도 무턱대고 증오할 수도 없는 캐릭터의 경계선에서 늘 서성거렸다. 정우성은 알랭 들롱을 상기하면서 악역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남자의 얼굴’에 대한 적극적인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남성의 얼굴이 입에 오르내리고 마케팅 된다. 특정 매력을 지닌 남자를 지칭하는 유행어가 뜨고 지기 시작했다. 육식남, 초식남, 짐승남, 차도남, 요섹남, 뇌섹남에 이르기까지. 잘 생긴 얼굴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녹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남의 가치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지금은 장동건 원빈 같은 흠잡을 수 없이 빼어난 얼굴만으로는 부족하다. 강동원이나 조인성 같은 독특한 표정이 있어야 한다.   
 
언론은 그의 은퇴를 전하면서 미남의 원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규정하기엔 무언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얼굴에 관해서만은 들롱은 초월적인 넘사벽이었다. 진정한 ‘원조의 시대’가 저물었다. 내 청춘의 한 조각이 떨어져가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시리다. 나에게도 ‘아이돌’이 있었다. 그는 내 청춘의 세포가 기억하는 얼굴패권주의 종결자였다. 굿바이 알랭! 

Beauty Explorer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hkb821072@naver.com)
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전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전 한국온라인신문협회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한기봉  love@lovesbeau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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