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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화장녀를 위한 변명

이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사회적 규범이나 합의가 확고하게 굳어지지도 않았다. 공개적인 칼럼이나 SNS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 엄청난 수의 댓글이 따라붙는다. 한 쪽에 치우친 견해를 밝히면 반대자들로부터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지하철 안에서의 여성의 화장 문제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논쟁이 벌어진 걸 봤다. 인내심을 갖고 다 읽어보니 대략 7대 3 정도로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몇 개를 골라봤다.

“1분 1초가 아쉬운 아침에 나 역시 출근 전쟁을 치르는 터라 이해는 가지만 지하철에서 화장품을 꺼내드는 여자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더구나 스킨로션 같은 기초부터 파운데이션에 색조화장까지 하고 뷰러로 집어가며 속눈썹 올리는 뷰티쇼를 보자면 가관이죠. 민낯에서 시작해 풀 메이크업이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니 같은 여자인 제 얼굴까지 화끈거릴 지경이에요.” 

“물리적 폭력만 있다고 생각하나요? 시각적, 심리적 폭력도 있어요. 공연장에서는 너무나 멋진 헤비메탈이 어떤 장소에선 소음이고 폭력이 될 수 있듯이, 개인의 사적 행위를 공공장소에서 봐야 하는 것도 폭력이에요.”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게 남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뭐가 천박한지 모르겠네요. 화장하는 게 풍기문란인가요, 공익에 해를 끼치는 건가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비도덕적 행위인가요? 여성이 자신의 화장 모습을 보이는 걸 부끄럽게 여길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이 뭐라 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부정적 견해는 남성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여성도 옹호만 하는 건 아니었다. 지하철 안의 당시 상황이나 어떤 화장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좀 엇갈렸다.

나도 전동차나 버스 안에서 화장하는 여자를 자주 본다. 화장하는 여자(그냥 줄여서 ‘화장녀’라고 부르겠다)를 훔쳐보는 건 아니다. 일부러 보는 게 아니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사적 행위를 빤히 들여다보는 건 좀 민망하긴 하다.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행위자가 민망해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민망함을 느낀다는 건 좀 묘한 기분이긴 하다.

지하철 화장녀를 안 보는 척 유심히 관찰해보면 두 가지 다른 표정이 있는 것 같다. 우선 남의 시선과 불편을 의식해 고개를 내리거나 돌리거나 무언가로 가리고 화장을 하는 여성이 있다. 이런 여성은 대체로 머리 매무새를 만지거나 콤팩트를 가볍게 두드리고 립스틱을 터치할 정도의 가벼운 화장을 한다. 

그 반대는 이런 여성이다. 남의 시선이나 객실 환경, 옆자리 승객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은 내 권리라는 도도한 표정과 큰 동작으로 당당하게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화장을 계속 하는 여성이다. 남자가 쳐다보면 마치 뭘 봐하는 표정으로 레이저를 쏜다. 기초에서부터 색조화장까지, 속눈썹 눈 뺨 입술 머리까지 입술을 물고기처럼 뻥긋거리며 자기 방 화장대에 앉아있는 것처럼 거울을 꺼내들고 긴 시간 화장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고는 그 모습에 별반 불편함까지 느끼지는 않는다. 때로는 오히려 짠한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물론 그 여성의 옷차림이나 인상이나 동작에서 풍기는 선입견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습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의 화장은 대체로 불가피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 완벽히 준비하고 길을 나서면 좋겠지만 살아간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시간이나 장소가 언제나 다 내 편은 아니다. 때론 사적 행위가 불가피하게 공적 공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많은 이들이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 행위에 대해서는 교양과 염치를 요구한다.

결국 초점은 개인적 행위가 불특정 다수를 불편하게 하느냐 여부에 있을 것이다. 붐비는 전동차 안에서 화장을 하느라 옆 사람을 건드리거나 냄새를 풍긴다면 물론 상대가 불편할 것이다. 그건 화장만이 아니다.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을 했거나 커피잔을 들고 탔거나 음식을 먹거나 크게 통화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화장은 좀 묘한 경계선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화장이 사적 행위인 건 맞지만 화장에도 정도의 급이 있다. 자기 안방처럼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있고 속삭이듯 통화하는 사람이 있듯이. 화장하는 모든 여성의 모습이나 행위가 타인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는 경우에도 화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게 온당할까?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통화를 하는 건 사적행위가 아닌가? 유독 화장하는 여성을 보는 건 다 불편한 일인가? 공공장소에서 의 화장은 교양과 품격이 떨어지는 행위로 간주되는 게 옳은가?  

이런 댓글을 보았다.
“화장을 하는 여자를 천박하다고 몰아세우는 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막말로 화장을 하고 하이힐에 몸매를 살려주는 옷을 입어야 직장 내에서 제대로 된 여성으로 대우하는 한국 사회의 천박함이야말로 진짜 천박함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런 남성 위주의 직장문화에 비판적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이중적 시선이 없다면 그녀들이 굳이 지하철 안에서 화장품을 꺼내들 필요는 줄겠지요.”

꾸미지도 않고 화장도 안 하는 여자는 왠지 정상적이지 않은 여자로 보면서, 심지어 화장은 여성의 당연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에 쫓겨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성을 두고 왜들 그리 왈가왈부 하냐는 항변이다. 

사실 한국의 직장 여성들은 꾸밈과 치장의 속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큰 용기가 없이는 민낯에 평상복으로 출근하기 어렵다. 일도 잘 하고 치장도 잘 해야 유능한 여성이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그게 어느 정도를 넘어선다 싶으면 ‘된장녀’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지하철 안에서의 화장 행위를 둘러싼 논란에는 교묘한 여성차별과 여성비하가 숨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는 아름답게 치장해야 하되 그 과정은 드러내지 말라’는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과장일까. 

오늘 낮에 지하철 안에서 화장하는 여자를 보았다. 콤팩트를 두드리고 립스틱을 고치고 아이라인을 손봤다. 60대 아저씨가 들으라는 듯 혀를 찼다. 그녀는 황망한 표정으로 핸드백을 닫았다.    

Beauty Explorer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hkb821072@naver.com)
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전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전 한국온라인신문협회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한기봉  love@lovesbeau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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