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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네”…드레스 코드 단상
러브즈뷰티 | 승인 2017.01.03 16:13
▲ 위 사진은 본 내용과 관련이 없음

연말 동창 모임에 드레스 코드가 있었다. 그 모임에선 첫 시도였다. “이 나이에 애들처럼 무슨 그런 걸…”하면서 어색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몇몇 친구가 밀어붙였다. 우리의 코드명은 ‘복고풍’이었다. 그런데 서로가 체면 차릴 사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제법 재미있게들 차려 입고 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옷차림을 보며 박장대소를 하고 품평을 하며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시절에 유행했던 나팔바지도 등장했고, 청재킷도 옷장에서 나왔다. 컬러풀한 꽃무늬에 단추 서너 개 풀어 젖힌 딱 붙는 셔츠 차림도, 장발 가발도 있었다. 교복과 책가방을 싸들고 와서 중간에 깜짝쇼 하듯 갈아입은 친구가 압권이었는데, 우리는 그 성의를 가상히 여겨 만장일치로 베스트 드레서 상을 주었다. 

송년회나 신년회 시즌이면 드레스 코드를 정한모임이나 파티가 눈에 띤다. 보통 동창회나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친목회, 직장 회식에서 드레스 코드를 정한다. 시상식이나 연예인의 팬 사인회에도 있다. 넓은 파티 룸을 빌려서 밤새 노는 일이 유행하면서 드레스 코드도 덩달아 많아졌다. 이제 드레스 코드가 낯선 단어나 풍경은 아닌 것 같다. 꼭 젊은이들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의전과 격식을 따지는 공식적 자리의 정장 드레스 코드 말고는, 대체로 개성적이고 톡톡 튀는 드레스 코드를 사람들이 좋아한다.

보통은 레드나 블랙 앤 화이트, 청바지, 모자쓰기 같은 드레스 코드가 많고 때론 노출 코드, 섹시 코드, 짝짝이 코드 같은 것도 봤다. 짝짝이 코드가 재미있는데 운동화나 구두, 양말 같은 걸 짝짝이로 신고 오는 것이다. 어떤 직장의 몇 년 전 신년회 드레스 코드에는 팀별로 그 해의 띠에 맞는 옷차림, 교복팀, 운동복팀, 천사와 악마팀, 캣우먼팀 같은 게 있었다.

드레스 코드(dress code)란 말 그대로 복장 규정이다. 국립국어원은 드레스 코드를 우리말로 ‘표준옷차림’으로 정하면서 ‘어떤 모임의 목적, 시간, 만나는 사람 등등에 따라 갖추어야 할 옷차림새’라고 설명했다. 

드레스가 코드가 될 수 있는 건, 옷도 미디어처럼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옷차림은 은연중에 성별, 재산, 지위, 직업, 종교나 정치적 성향, 성적 취향을 드러낸다, 패션은 시대의 흐름과 시대적 가치를 전해주는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로원 의원들만 자주색 물감으로 염색한 옷을 입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체크무늬 복장은 가문과 혈통을 나타낸다. 이슬람 여성들의 부르카는 율법을 따르겠다는 종교적 표현이다. 한때 오른쪽에만 귀고리를 하는 남자는 동성애자로 통했다. 

이와는 달리 좁은 의미의 드레스 코드는 특정한 커뮤니티나 모임, 장소에서 요구하는 복장 규정이다. 명문 사학이나 골프장, 고급 음식점, 사교장 중에는 드레스 코드가 있는 데가 많다. 상의나 넥타이를 꼭 갖춰야 한다든지 반바지나 트레이닝복, 후드 달린 옷이나 야구 모자는 안 된다는 식이다. 엄격한 드레스 코드를 유지하는 건 그 커뮤니티의 품격과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드레스 코드에 얽힌 일화는 많다. 스위스 은행 UBS는 2010년에 무려 44쪽에 달하는 엄격한 직원 복장 규정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인권 침해 논란을 불렀다. 남성 직원에게는 검정·네이비·회색 정장에 검은 양말을 요구했고 여직원에게는 피부색과 비슷한 속옷을 입게 했고 몸에 조이는 블라우스나 검은색 매니큐어를 금지시켰다. 심지어 점심에 마늘과 양파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까지 포함됐다. 비판이 일자 UBS는 규정을 완화했다.

우리나라에선 2011년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가 한복 차림으로 들어가려다 출입을 제지당한 일이 있었다. 그녀가 그 사연을 인터넷에 올리자 호텔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호텔 측은 다른 손님이 한복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소매에 음식이 묻어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금지시켰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이부진 사장이 바로 그녀를 찾아가 사과했다. 

2014년에 사망한 호주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방송인, 인권운동가였던 스텔라 영의 장례식 드레스 코드는 ‘fabulous(재미있는)’였다. 조문객은 검은 상복 대신 개성 넘치는 차림이나 재미있는 장식이 달린 옷들을 입고 나타났다. 어릴 적에 희귀병을 앓아서 1미터도 안 되는 키에 휠체어에 의지해 평생을 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고인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코드’의 고전적 의미는 통신이나 컴퓨터에서 정보 표시를 위한 기호, 또는 그 기호를 표현할 때의 약속을 말한다. 그 의미가 확대돼 문화적 코드, 정치적 코드라는 식으로 어떤 장르에 대한 해석적 측면을 말하기도 하고 사회나 계급, 직업 등에서의 규약이나 관례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인간관계에서는 나하고 생각이나 가치관, 성향, 취향이 통하는 사람을 보통 “코드가 맞는다”고들 말한다. 

드레스 코드에는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일차적 동기가 있지만, 심리적이고 관계적이며 소통적인 측면이 분명 내재해 있다. 드레스 코드의 심리학이란 결국 복장을 매개로 서로의 정체성과 동질감,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걸 통해 서로가 남이 아니라는 연대감,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커플룩이나 유니폼도 그런 것이고 단체로 폭탄주를 돌리는 것도 비슷한 심리다.  

누구는 드레스 코드가 개성을 무시하고 선택의 여지를 막는 끼리끼리 문화, 그들만의 배타적 리그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색하고 비판할 게 있을까. 아직까지 그런 비판은 그리 온당해보이지는 않는다. 연(緣)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드레스 코드는 어찌 보면 어울리는 것일지 모른다. 다만 파티 문화가 아직은 좀 어색하고 자신의 복장 연출에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드레스 코드 문화가 아직까지는 이벤트적 의식 정도로 인식되는 것 같다. 

개성 있고 유머러스한 드레스 코드는 모임에 재미와 활력을 더해준다. 드레스 코드를 잘 소화하고 연출하는 사람을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드레스 코드에서도 얼마든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중년의 드레스 코드 모임은 유쾌하고 즐거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점잔을 빼느라 드레스 코드를 무시하고 나온 친구들은 뒷전 신세였다. 결과는 “재미있네. 내년에도 드레스 코드 하자”는 약속이었다.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hkb821072@naver.com

필자 약력 : 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전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전 한국온라인신문협회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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