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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패션, 그 억압에 대하여

#1946년 7월 5일. 딱 70년 전이다. 파리에서 열린 수영복 패션쇼. 한 여성 모델이 등장했다. 손수건만한 천으로 가슴과 아래만 가린 채. 관중도 세계도 경악했다. 그 직전 미국이 태평양 비키니섬에서 실시한 핵폭탄 실험처럼. 비키니는 그렇게 탄생했다. 비키니를 디자인한 루이 레아르는 “결혼반지 사이로 빼낼 수 없으면 진짜 비키니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키니는 시련을 겪는다. 1950년대까지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몇몇 유럽국가, 1960년대까지 미국의 몇 개 주는 법으로 착용을 금지했다. 바티칸은 비키니를 입는 것 자체가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비키니는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1972년 한 유력 신문에는 모 대학병원 정신과 과장의 기고가 실렸다. “욕구불만을 가진 여성들이 차원 낮은 만족이라도 얻으려고 자기 몸을 노출하는 것이며 노출은 남자에 대한 열등의식 때문이다.” 어느 유명 작가는 “그녀들의 마음에 창부적 근성이 있다고 하면 모독이 될까”라고 썼다. 

▲ 지난 8월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경찰이 부르키니를 입은 이슬람 여성에게 벗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사진 유튜브)

#그 비키니가 이름을 바꾸고 다시 국제적 논란을 부르고 있다. 무슬림 여성들이 입는 전통의상 ‘부르카(burka)’와의 합성어인 ‘부르키니’다. 2004년 호주 디자이너 아헤다 자네티가 무슬림 여성들도 공공장소에서 수영하거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잠수복에 가까운 모양새다.

▲ 부르키니 의상. 전신을 감싼 잠수복 스타일이다.

7월 프랑스 휴양도시 칸을 비롯해 프랑스 30개 도시와 유럽의 여러 도시가 부르키니를 입는 것을 금지했다. ‘종교를 드러내는 옷이 공공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슬람 테러에 대한 일반의 불안을 감안한 조치다. 이후 부르키니 금지령은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에 의해 무효화됐지만 많은 도시들이 여전히 이 규칙을 적용하고 있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13년 2월 4일은 프랑스 여성사에 의미심장한 날이다. 이날부터 파리 여성들은 213년 만에 ‘합법적으로’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800년 파리 경찰청은 특별한 의학적 이유가 없는 한 여성이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전 옷차림은 바로 신분의 표상이었다. 귀족은 ‘퀼로트(culottes)’라는, 수탉처럼 한껏 멋을 낸 무릎 길이의 치마바지를 입었고 노동자는 긴 바지를 입었다. 자유와 평등의 기치를 내세운 혁명 이후 평민들이 입던 바지는 공화국의 이상을 실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1800년 선포된 여성의 바지 착용 금지령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대상은 오직 남성에 한한다는 걸 명백히 선포한 조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문화됐지만 그때는 그랬다. 

코코 샤넬이 1910년대 여성을 코르셋과 하이힐과 화려한 드레스에서 해방시키고 실용적인 바지를 디자인하기 시작한 후 바지의 금기는 점차 허물어져 갔다. 하지만 1980년까지도 프랑스 의회는 여성 의원들이 바지를 입고 등정하지 못하게 했다.

#여성의 바지 정장이 최근 해외 컬렉션 무대와 레드 카펫에 자주 오르기 시작했다. 여배우들의 드레스 자락이 레드 카펫을 쓸고 다니는 국제영화제에서 바지 정장 차림의 여배우들이 눈에 띄었다.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곡성’의 천우희, 수전 서랜던, 이자벨 위페르 등이 검정 바지 정장을 입었다. 배우 엠마 왓슨, 귀네스 팰트로, 케이트 블란쳇과 모델 지지 하디드 등은 최근 공식 석상에 바지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 캐서린 헵번은 할리우드에서 처음으로 바지를 즐겨 입은 배우였다. 반항적인 듯하면서 자유로운 이미지를 표출한 매니시룩의 배우였다.

바지 정장의 원조는 큰 키에 빨강머리, 강한 성격의 배우 캐서린 헵번(1907~2003년)이다. 그녀는 할리우드식 화려함의 규칙을 거부했다. 여성의 바지 차림이 어색했던 시대에 헐렁한 바지에 낮은 구두, 셔츠를 즐겨 입고 카메라 앞에 민낯을 보여주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여성이 열등하다고 간주되어 왔음을 깨달았다”며 바지를 입는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여성의 패션은 이렇듯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슬람 일부 국가는 아직도 여성의 청바지 착용을 금지할 정도로 억압적이다. 21세기가 한참 흘러가고 있는 이 순간도 여성은  패션의 자유를 온전히 획득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든, 이념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관습적으로든, 이유는 달라도 어떤 국가나 사회에서든 여성의 패션에는 일정한 억압과 구속이 존재한다. 

그런 억압이 아니더라도 여성의 옷차림이 늘 남자의 시선이나 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 어찌 보면 그 사실이 더 큰 무형의 억압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옷차림을 보는 남성의 시각은 여전히 남성본위적이며 그 밑바탕은 변함없는 남성우월적 사회이다. 패션을 패션 그대로 보지 않고 의미를 덧칠한다. 덧붙여진 의미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우습거나 사소하거나 억울하거나 오해받는 것이 많다. 남성은 여성의 옷차림을 성적인 기호나 남자를 의식한 행위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여성은 그런 시선을 알기에 옷의 선택에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의 지위상승과 사회활동에 비해 유리천장은 여전히 높은 것처럼, 패션에서도 여성의 지위는 아직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 여객기를 탈 때마다 늘씬한 몸매에, 쪽진 머리, 몸에 딱 붙는 치마 유니폼, 높은 하이힐을 신는 여승무원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사고가 났을 때 승객의 탈출을 도와야 하는 승무원의 임무에도 장애가 되지만, 왜 그렇게 보란 듯이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만을 부각하는 근무복을 입어야 할까. 

아시아나 항공은 2013년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여승무원의 바지 유니폼을 만들긴 했다. 우리나라에서 바지의 해방은 늦었다, 세브란스 병원은 1992년 여의사에게 바지 착용을 허용했다고 한다. 여성가족부는 2003년 여학생 교복을 치마로만 한정하는 건 남녀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대다수 여학생들은 지금도 추운 겨울에 종아리를 내놓고 교문을 들어선다.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바지를 입지 않는다. 아직도 여성의 바지정장은 전문직 여성이거나 ‘센’ 이미지를 준다.

아직도 적지 않은 여성들은 옷장에서 바지를 꺼낼 때 고민하고 주저한다. 바지는 바지일 뿐인데. 치마의 반대가 아닌 것이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1995년 영화 ‘프레타포르테’(국내에선 ‘패션쇼’라는 제목으로 상영)의 피날레는 충격적이다. 말 많은 패션에 대한 가장 수위 높은 저항, 그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 모델들의 워킹 장면이다. 자연의 차림으로 돌아가라, 인간의 몸 자체가 최고의 패션이다, 누드 워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hkb821072@naver.com

필자 약력 : 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전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전 한국온라인신문협회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한기봉  love@lovesbeau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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