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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의 패션이 무슨 문제라고?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은 최근 이런 제목의 기사를 썼다. “테리사 메이가 무엇을 입는지가 뭐가 문제인가?” 영국의 EU(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 후 영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에 오른 그녀의 패션에 대해 대중과 언론이 보여주는 지나친 관심을 비꼰 제목이다. 

메이 총리는 우리 나이로 올해 환갑이다. 그녀는 세계의 여성 정치 지도자 중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불린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호피 무늬 하이힐, 록 가수처럼 뾰족한 징이 사방에 박힌 구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사이하이 부츠, 알록달록한 네일 아트, 크고 눈에 확 띄는 목걸이,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영화제 레드 카펫에서나 입을 법한 도발적 드레스, 화가 모딜리아니의 추상화 색채를 응용한 화려한 코트. 

▲ 메이 총리가 취임한 7월 13일 영국 최대 일간지 더 선의 1면.
메이 총리의 호피 무늬 하이힐 아래에 총리직을 두고 경쟁했던 남성 정치인 6명의 얼굴을 편집했다.

오죽했으면 영국 최대 일간지 선은 7월 13일 그녀의 총리 취임식 날 1면에 메이의 호피 무늬하이힐을 크게 확대해 싣고 구두 밑에 총리직을 두고 경쟁했던 남성 정치인 6명의 얼굴 사진을 편집했다. 마치 메이가 그들을 하이힐로 짓밟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제목은 ‘HEEL, BOYS’였다. ‘힐’이란 단어엔 ‘내 뒤를 따르라’는 의미도 있다. 

남녀 정치인의 패션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품평은 불공평하다. 너무 잘 입어도 말이 많고 못 입어도 조롱을 당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무장관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패션 감각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자주 들어야 했다. 남성 정치인이 어떤 브랜드의 가방을 들었는지, 어떤 브랜드의 양복을 입었는지 보도하는 신문은 없다. 케네디 전 미대통령은 “패션이 정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연설보다 재키의 옷에 더 집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성 정치인의 패션은 흔히 정치적 메시지로 읽히고 정치적 행위로 해석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무장관은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다. 적대국과 협상할 때는 독수리나 성조기 브로치로 미국의 파워를 과시했다. ‘독사 같다’는 비판을 받았을 때는 뱀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회담장에 나갔다. 

2013년에 사망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그렇다. 완고한 패션이었지만 그녀의 무기는 브로치가 아니라 핸드백이었다. 검은 색의 딱딱한 사각 가죽 핸드백을 늘 들고 다녔다. 자국의 장관들 앞에서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나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 핸드백을 테이블에 턱 올려놓는 단호한 모습만으로 심리적 우위에 섰다. 대처의 핸드백은 ‘핸드배깅(handbagging)’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자기 주장을 내세운다’라는 뜻이다.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잘 입는 것은 국가가 나에게 부여한 임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녀에게 패션은 곧 정치행위였다.

메이 총리에 비견되는 패셔니스타 여성 정치인으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가 있다. 메이 총리와 동갑인 프랑스 여성이다. 마른 몸매에 늘씬한 키, 우아한 은발을 휘날리며 걷는 것만으로도 포스가 읽히는데 언론의 시선은 그녀의 화려한 스카프에 머문다. 언론은 그녀의 스카프 색깔과 무늬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는다고 한다. 
여성 지도자의 패션을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하는 건 사실 언론이 만들어낸 거라고 난 생각한다. 대처나 올브라이트도 처음엔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언론이 의미를 붙여가면서 여성 스스로도 그걸 의식해 그 상황에 맞춰 패션을 연출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드레스 코드’도 그런 경우다. 국가안보의 위기상황이나 개혁을 강조하는 자리, 정상회담에서 입는 재킷의 색깔에 한국 언론도 정치적 메시지를 부여했다.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패션을 정치적 메시지가 아닌, 패션 그 자체로 즐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인이 의도했든 안했든, 여성의 패션은 개인적이거나 사회적, 정치적인 어떤 암시나 메시지의 함축으로 읽히는 것을 피할 수가 없는 거 같다. 행동주의적 여성들은 그걸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기도 한다. 모피옷에 반대해 나체 시위를 하거나, 여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된 의상을 거부하거나, 요즘 세계적 스타들이 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에 우아한 롱드레스 대신 바지 정장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라든지...

그런 셀렙이 아니어도 가깝게는 여자친구나 애인, 여성 동료의 의상의 변화에 남자들은 애써 또는 굳이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의 그런 품평에 신경을 쓰고 패션을 연출한다. 그게 바로 패션의 심리학이요, 사회학, 정치학이다.

나는 바로 그런 점에 초연한 메이 총리의 스타일과 패션이 좋다. 그녀의 패션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없다. 앞으로 언론에 의해 형성될지 모르지만 그녀는 패션을 패션 그 자체로 즐긴다. 누가 뭐래도 개의치 않는다. 순수한 패셔니스타이다. 그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이다. 그녀는 자신의 패션을 자신이 지배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반드시 가져갈 품목으로 보그지 평생 구독권을 꼽았다고 한다. 영국 일간지 더 미러는 “여성 정치인이 리더십보다 패션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되지만, 패션에 대한 열정을 가진 여성 지도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다”고 보도했다. 

여성과 패션에 대한 그녀의 어록을 보자. 
“나는 정치와 비즈니스에선 아주 명확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남자처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옷을 좋아하고 신발을 좋아한다. 여성들이 부닥치는 문제는 품평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여성들에게 ‘고정관념에 맞추려 하지 말고 그냥 당신 자신이 되어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당신의 개성이 옷이나 신발을 통해 나타난다면 그렇게 해라.” 

▲ 영국 메이 총리(사진 유튜브)

뮤직테라피, 아트테라피가 있듯이 요즘엔 패션테라피도 관심을 끈다. 패션테라피는 옷을 차려입는 일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 자신감을 찾고 패션을 즐김으로써 안정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걸 방해하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맹신, 안전한 컬러나 디자인 뒤에 숨으려는 마음, 트렌드를 좇아가려는 조급함, 핏이 맞는 옷보다 작은 사이즈에 대한 집착이라고 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촌뜨기 기자 지망생 앤디는 뉴욕 최고의 패션잡지 편집장 비서로 취직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좋은 품평을 받기 위해 그 화려한 세계에 점차 적응해간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자아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회사 문을 나선다.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hkb821072@naver.com

필자 약력 : 전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전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전 한국온라인신문협회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한기봉  love@lovesbeau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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